와인 전문서를 읽으면 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긴 한다. 하지만 와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가능한 한 많은 와인을 맛보는 것이다. 와인의 지식을 늘리려면 책을 읽는 것이 좋지만, 즐거움과 실용성 면에서는 시음이 책 보다 더 유익할 것이다. 결국 책도 보고 시음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와인 시음은 기본적으로 '색깔 보기', '스월링', '냄새 맡기', '맛보기', '음미' 이렇게 다섯 단계로 이뤄진다.
>>색깔 보기
와인 색깔을 구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얀색 배경, 이를테면 흰 냅킨이나 테이블보 따위에 와인잔을 비스듬히 대보는 것이다. 물론 기준이 되는 색깔은 시음하는 와인이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인지에 따라 다르다.
색깔에는 와인에 대한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 화이트 와인
밝은 색 - 연둣빛이 살짝 도는 옅은 밀짚색
서늘한 지역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비교적 어린 와인, 오크통 숙성은 하지 않았거나 아주 짧은 기간만 숙성, 알코올 함량이 낮고 라이트 한 바디감.
중간색 - 감미로운 레몬빛 노란색
길지도 짧지도 않은 평균적인 숙성 기간, 중간 정도의 알코올 함양과 바디감, 오크통 숙성을 하기는 했으나 기간이 길지는 않음, 온화한 기후에서 자란 포도를 사용함
짙고 어두운 색 - 그윽한 황금빛
비교적 따뜻한 지역에서 자란 포도, 오크통 숙성, 긴 숙성 기간, 알코올 함유량이 높고 바디감이 무거울 수 있음.
> 레드 와인
밝은 색 - 오렌지빛이 살짝 도는 밝은 가네트색 혹은 벽돌색, 잔을 투과하여 볼 수 있을 만큼 투명함
비교적 서늘한 지역의 포도, 긴 숙성 기간, 알코올 함량이 낮고 라이트 한 바디감.
중간색 - 중간 정도의 가네트색 혹은 루비색
길지도 짧지도 않은 평균적인 숙성 기간, 중가누정도의 알코올 함량과 바디감, 온화한 기후에서 자란 포도를 사용함.
짙고 어두운 색 - 핑크빛이나 붉은빛이 도는 짙고 어두우며 불투명한 자주색
따뜻하거나 더운 지역에서 재배한 포도, 높은 알코올 함량과 무겁고 꽉 찬 바디감.
같은 와인을 마시면서도 색깔에 대한 인식이 저마다 다르다. 인식은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스월링 (잔 흔들기)
잔을 흔드는 이유는 와인에 산소를 공급해 맛과 향을 더 발산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와인잔을 흔들면 에스테르, 에테르, 알데히드가 나와 산소와 결합하여 와인의 부케가 발산된다. 즉, 와인을 공기에 노출시킴으로써 더 풍성한 아로마를 발산시킨다. 와인잔 위쪽에 손을 가져다 댄 상태에서 잔을 흔들어주면 부케와 아로마가 더욱더 풍성하게 발산된다.
>>냄새 맡기
냄새 맡기야말로 와인 시음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사람은 다섯 가지 맛, 즉 단맛, 신맛, 쓴맛, 짠맛, 감칠맛밖에 느낄 수 없다. 하지만 후각의 경우 보통 사람이 맡을 수 있는 냄새는 2000가지가 넘으며 와인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도 200가지 이상이다. 와인잔을 스월링 하여 부케를 발산시켰다면 이제 최소한 세 번 정도 와인의 냄새를 맡아볼 차례다. 세 번째 냄새를 맡을 때는 첫 번째 냄새를 맡았을 때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것이다.
와인에서 어떤 냄새를 맡을 수 있는가? 어떤 유형의 노즈가 나는가? 냄새는 시음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인데도 대부분의 사람이 냄새 맡기에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지 않는다.
와인의 노즈를 정확히 구분하게 되면 특정한 특성을 감별하는 데 유용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 스타일을 파악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포도 품종별 냄새를 '기억'해 두는 것이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 대표 품종인 샤르도네, 쇼비뇽 블랑, 리슬링 세 가지만 기억해 두면 된다. 각각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 때까지 냄새를 몇 번이고 맡고 또 맡아보자. 레드 와인은 좀 더 까다롭지만, 이 역시 세 가지 대표 품종을 꼽을 수 있다. 바로 피노 누아, 메를로, 까베르네 쇼비뇽이다.
후각을 통해서는 와인의 결점도 감지할 수 있다.
와인에서 맡을 수 있는 안 좋은 냄새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식초 냄새 --> 원인 : 와인에 초산이 과다 함유됨
- 셰리향 --> 원인 : 산화
- 눅눅한 곰팡이 냄새 --> 원인 : 불량 코르크
- 유황 냄새(성냥 타는 냄새) --> 원인 : 이산화황이 과다 함유됨
산소는 와인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지만 최악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소량의 산소는 (스월링 할 때처럼) 와인 냄새가 발산되도록 해주지만, 산소에 오래 노출되면 오히려 와인에 해가 되며 특히 오래된 와인일수록 더하다. 한편 스페인산의 정통 세리는 적절한 통제하에 산화를 시키는 양조 방식에 따라 만들어지는 와인이다.
이산화황은 사람에 따라 민감도가 다르며,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부작용이 없지만 천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미국에서는 아황산염에 민감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규정된 연방법에 따라 와인을 출시할 때 라벨에 아황산염이 들어 있다는 경고문을 명시한다. 한편 모든 와인에는 일정량의 아황산염이 들어 있는데 이 아황산염은 발효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부산물이다.
>>맛보기
와인을 맛볼 때 그냥 한 모금 마셨다가 바로 삼키고 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맛을 보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맛을 보려면 미뢰를 활용해야 하며 미뢰는 입 전체에 퍼져 있다. 혀의 양면과 밑과 끝에, 목 안쪽에까지 뻗어 있다. 그런데 와인을 들이켜고 바로 삼켜버리는 것은 그 중요한 미각수용체를 무시하는 셈이다.
와인을 맛볼 때는 와인을 입 안에 3~5초 정도 머금고 있다가 삼키길 권한다. 그러면 와인이 데워지면서 부케와 아로마에 대한 신호들이 콧구멍을 타고 뇌의 후각 영역인 후각망울에 닿았다가 다시 대뇌변연계로 옮겨간다. 냄새가 시음의 9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와인을 맛볼 때 생각해야 할 요소들
와인을 맛볼 때는 와인의 가장 두드러진 맛과 그런 맛에 대한 자신의 민감성에 유의하라. 그런 맛이 혀나 입의 어느 부분에서 느껴지는지도 파악하라. 앞서도 언급했듯이 사람은 단맛, 신맛, 쓴맛, 짠맛, 감칠맛만 감지할 수 있는데 와인에는 짠맛이 없으니 네 가지 맛만 살펴보면 된다. 와인의 쓴맛은 보통 알코올과 탄닌의 높은 함량으로 인해 생성된다. 단맛은 잔당이 남아 있는 와인에서만 난다. '시큼한 맛'으로도 표현되는 신맛은 와인의 산도를 가리킨다.
- 단맛 : 혀끝에서 가장 민감하게 감지된다. 와인에 단맛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바로 감지해 낼 수 있다.
- 산도 : 혀의 양옆, 볼과 목 안쪽에서 감지된다. 일반적으로 화이트 와인과 비교적 가벼운 스타일의 레드 와인은 산도가 높다.
- 쓴맛 : 혀 안쪽에서 감지된다.
- 탄닌 : 탄닌에 대한 지각은 혀의 중간 부분에서 시작된다. 탄닌은 흔히 나무통속에서 숙성된 화이트 와인이나 레드 와인에 들어 있다. 너무 어리면 와인의 탄닌은 입 안이 마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와인에 탄닌이 너무 많으면, 탄닌이 입 전체를 덮어버려 과일맛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탄닌은 미각이 아니라 촉각으로 느낀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 뒷맛 : 와인의 전반적인 맛과 성분의 밸런스가 입 안에 남아 있게 된다. 그런 밸런스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까? 오랫동안 유쾌한 뒷맛이 남는 와인은 대체로 고품질이다. 뛰어난 와인은 대부분 1~3분쯤 후에도 뒷맛이 이어지면서 모든 성분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음미
와인을 맛본 후에는 잠시 가만히 음미해 보라. 방금 느낀 맛에 대해 생각하면서 느낌을 명확히 잡는데 도움이 될 만한 다음의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보자.
- 와인의 바디가 라이트 인가, 미디엄인가, 풀인가?
- 레드 와인이라면 와인에 함유된 탄닌이 너무 강하거나 떫지는 않은가?
- 화이트 와인이라면 산도가 어느 정도인가? 너무 약한가, 딱 좋은가, 과한가?
- 잔류 당분, 과일맛 신맛, 탄난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분은?
- 성분의 밸런스가 얼마나 지속되는가? (10초, 60초 등)
- 마시기 좋게 숙성되었는가, 아니면 더 숙성시켜야 하는가?
- 어떤 음식이 어울릴 것 같은가?
- 자신의 취향에서 평가할 때 와인이 제 값어치를 하는가?
- 가장 중요한 질문! 그 와인이 마음에 드는가? 당신의 스타일인가?
와인 시음은 화랑에서 작품을 둘러보는 것에 비유할 만하다. 화랑에 가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그림을 본다. 어떤 작품이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는 첫 느낌이 말해준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발견하면 그 작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진다. 화가가 누구일까? 작품 속에 감춰진 배경은 무엇일까? 어떻게 그려진 걸까? 등.
이런 궁금증은 와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와인 애호가 역시 일단 마음에 드는 와인을 발견하면 그 와인에 관해 모든 것이 알고 싶어 진다. 와인 메이커와 포도 품종, 원산지뿐만 아니라 블랜딩 와인이라면 블랜딩 내용도 궁금할 것이고, 와인에 얽힌 역사까지 알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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