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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바이블

미국 와인의 르네상스

by 노자극 2024. 6. 9.

 

 미국 와인의 르네상스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짚을 수는 없으나, 금주법 이후 처음으로 테이블 와인 (알코올 도수가 7%~14%)이 주정강화 와인 (알코올 도수 17%~22%) 보다 많이 팔렸던 1968년부터 살펴보자. 당시 미국 와인은 품질이 향상되고 있는 중이었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유럽, 특히 프랑스에서 만든 와인을 최고로 여기고 있었다.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초반에 캘리포니아의 헌신적인 몇몇 와인 메이커들은 함께 뜻을 모아 유럽의 최상급 와인에 견줄 만한 와인을 생산하는 데 전심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초창기에 만든 와인들은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차츰 전국의 예리한 와인 전문 작가와 와인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 와인 메이커들은 꾸준히 제품의 질을 높여나가며 점차 깨달은 바가 있다. 부르고뉴, 샤블리, 키안티 같은 범칭으로 부라던 캘리포니아의 대량 생산 와인들과 차별성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와안 구매자와 소비자들의 뇌리에 자신들의 와인이 유럽 와인과 동류로 인식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내놓은 기막힌 해법이란 그들이 만든 최상급 와인 라벨에 와인명으로 포도 품종을 붙이자는 것이었다.

 포도 품종을 와인명으로 쓸 때는 샤르도네, 카베르네 쇼비뇽, 피노 누아 등 주원료가 된 포도의 이름을 붙인다. 따라서 영리한 소비자라면 샤르도네라는 이름이 붙은 와인을 보면 그 품종의 포도로 만든 와인의 보편적인 특징을 지닌 와인임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따라 와인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와인 구매가 더 쉬워지기도 했다.

 포도 품종을 와인명으로 쓰는 관행은 업계에 빠르게 확산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포도 품종의 와인명이 미국 와안 산업계의 표준이 되자 연방정부는 라벨 규정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현재 포도 품종을 와인명으로 쓰는 것은 미국의 최상급 와인의 표준이 되었고 다른 많은 국가도 채택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와인이 세계적 관심을 받는 데도 이바지했다. 미국은 현재까지도 와인 생산량의 90%를 캘리포니아가 점유하고 있지만, 미국의 다른 지역 와인 메이커들도 캘리포니아의 성공에 자극을 받아 우수 품질의 와인 생산에 다시 관심을 가울이고 있다. 

 

§미국의 우수 와인들

 미국 와인을 영리하게 구입하려면 각 주나 각 주의 생산지역과 관련된 상식을 어느 정도 익혀야 한다. 주에 따라서 혹은 주 내의 생산 지역에 따라서 화이트 와인이나 레드 와인만 생산하는 곳도 있으며, 심지어 어떤 지역은 특정 포도만 원료로 쓰기도 한다. 따라서 주별 혹은 지역별로 특별히 규정된 포도 재배 지역, 즉 AVA American Viticultural Areas (미국 정부 승인 포도 재배 지역)를 알고 있으면 유용하다. 

 AVA란 연방정부에 승인되고 등록된 주나 지역 내에 속하는 특정 포도 재배 지역을 말한다. AVA 지정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으며 유럽의 지역별 관리 제도를 본떠서 만든 제도이다. 프랑스의 경우, 보르도와 부르고뉴는 AOC라는 원산지 표기제를 엄격히 시행한다. 이탈리아도 토스카나와 피에몬테는 DOC Denominazion di Origine Controllata라는 이름으로 지정되어 있다. AVA 지정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나파 밸리는 캘리포니아주에서 승인된 포도 재배 지역이다. 컬럼비아 밸리는 워싱턴주 소재의 AVA이며, 오리건주의 윌라미트 밸리와 뉴욕주의 핑거 레이커스도 그와 유사한 승인을 받은 지역이다. 

 와인 양조 업자들은 수년 전의 유럽 양조업자들이 그러했듯이 특정한 토양과 기후 조건에서 포도가 가장 잘 자란다는 사실을 터득하고 있다. AVA개념은 와인 구매에서 중요한 요소이며, 사람들이 특정 포도 품종이나 와인 스타일에 친숙해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여전히 중요시될 것이다. AVA가 와인 라벨에 명시되어 있다면 최소한 그 와인을 만든 포도의 85%는 그 지역에서 재배된 것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AVA인 나파 밸리는 카베르네 쇼비뇽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나파 밸리 내에는 카네로스라는 더 작은 구역이 있는데 이곳은 비교적 기온이 차다. 샤르도네와 피노 누아는 제대로 숙성되려면 비교적 차가운 생육 시기가 필요한 만큼 이 두 포도 품종은 그런 AVA에 특히 적합하다. 한편 뉴욕주에는 리슬링으로 유명한 핑거 레이크스 지역이 있다. 

 AVA 승인은 그것이 꼭 품질의 보증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와인에 관해서라면 정평이 나 있는 유명한 지역임을 알려주는 표시다. 와인 메이커나 소비자들로서는 유용하게 참고할 만한 지리적 정보인 셈이다. 그 근원, 즉 원산지는 와인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원산지와 포도 품종을 통해 와안의 근원에 대해 더 많이 알수록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의 와인을 사더라도 자신 있게 고를 수 있다. 주요 포도품종이나 와인의 스타일에 대한 특징을 더 많이 익혀둘수록, 자신이 선호하는 와인의 특징을 더 많이 숙지할수록 자신의 기호에 맞는 와인을 생산하는 AVA를 현명히 가려낼 수 있다. 

 최근 들어 기존의 표준을 무시하고 최상급 와인에 상표명을 붙여 출시하는 것이 세계적 트렌드로 잡리 잡았는데 우수 와이너리들은 이런 식의 상표명 와인 출시를 같은 AVA에서 내놓는 다른 와인들, 심지어 자신들의 다른 상품들과 차별화시키는데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상표명이 붙은 와인들 상당수가 메리티지 Meritage (보르도의 전통적 와인용 품종을 블랜딩 하여 만든 와인)라는 범주에 속한다. 미국의 상표명 와인의 예를 소개하자면 도미누스 Dominus, 오퍼스 원 Opus One, 루비콘 Rubicon 등이 있다.

 기준과 라벨을 통제하는 연방법은 고급 와이너리들이 상표명을 점점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연방법에 따르면 라벨에 포도 품종을 표시하려면 와인의 원료가 된 포도의 최소한 75%가 그 포도품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화이트 블렌드'나 '레드 블렌드'가 표기된 라벨의 와안 출시가 점점 늘고 있기도 하다.

 워싱턴주 컬럼비아 밸리 지역에 재능 있고 혁명적인 와인 메이커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카베르네 쇼비뇽 60%에 다른 몇 가지 포도를 섞어 풀 바디의 뛰어난 보르도 스타일의 와인을 생산해 내기로 마음먹는다. 야심에 찬 그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말로 훌륭한 와인을 만들어낸다. 숙성시키기에도 적합하여 5년 후면 마시기에 적절한 시기가 되지만, 10년 후에 마시면 더욱 좋은 와인이다.

5년 후 이 와인 메이커는 자신들이 들인 노력의 열매를 맛보고 뿌듯해한다. 맛이 기막힐뿐더러 정말로 뛰어난 와인만이 가진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와인을 어떻게 다른 와인들과 차별화시킬까? 어떻게 해야 알려지지도 않은 와인에 선뜻 고가의 가격을 지불하도록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을까? 원료로 쓰인 카베르네 쇼비뇽이 75%가 못 되기 때문에 라벨에 카베르네 쇼비뇽을 표기할 수도 없다. 이러한 이유로 양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생산자들 중 상표명을 이용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 와인 산업이 건전하다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만큼 더 좋은 와인을 생산하는 와인 메이커들이 점점 늘고 있으며, 계속하여 최고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미국 와인의 미래

 이제 미국인들은 미국의 와인을 마시고 있다. 

 미국에서 소비되는 와인의 75% 이상이 국내산이며 그것도 캘리포니아, 워싱턴, 오리건, 뉴욕주의 4대 생산 주 와인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1970년 무렵만 해도 미국 주의 3분의 2에서는 와이너리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던 상황이었으나, 현재는 50개 주전역에서 와인을 생산 중이다. 

 최근 20년 사이에 일어난 와인의 괄목할 만한 품질 향상에 힘입어 미국 와인 소비는 늘어나고 있다, 품질 향상과 소비 증가라는 이 두 가지 트렌드가 상호 보완 관계에 있는 만큼 앞으로도 수년간 미국의 와인 양조업계에서 주목할 만한 일들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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