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향과 풍미에 중대한 요소 중 하나인 발효에 대해 알아보겠다.
'발효'란 포도즙이 와인으로 변하는 과정으로 다음과 같은 공식에 따라 일어난다.
[ 당분 + 효모 = 알코올 + 탄산가스 ]
발효 과정은 파쇄된 포도의 당분이 모두 알코올로 바뀌거나, 바뀐 알코올 농도가 15%에 달하여 알코올이 효모를 제거하는 시점에 이르면 끝이 난다. 포도는 광합성을 통해 익으면서 당분이 자연적으로 축적되며, 효모도 포도껍질에 흰 가루가 피면서 자연적으로 생겨난다. 하지만 오늘날의 와인 메이커들은 이런 천연 효모만 사용하진 않는다. 천연 효모에서 분리 배양된 실험실 균주들의 사용도 흔하며 각 균주는 와인의 스타일에 저마다 다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편 탄산가스는 공기 중으로 날아가버린다. 단, 샴페인 및 그 밖의 스파클링 와인은 예외적인 경우로, 특별한 과정을 거쳐 탄산가스를 보존한다.
와인 양조 중 효모가 머스트(포도 파쇄액)의 당분을 먹고 얼코올과 탄산가스를 내놓는 발효 과정 역시 와인의 아로마와 풍미를 끌어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발효 기간은 온도에 따라 레드 와인의 경우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을 수도 있고 화이트 와인과 스위트 와인의 경우엔 몇 주에서 몇 달까지 걸리기도 한다. 발효 방법에는 고온 발효나 저온 발효가 있어서 온도에 따라서도 풍미에 다른 개성이 부여된다.
뿐만 아니라 와인을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화학 작용을 일으키지 않아 와인에 향을 부여하지 않음)에서 발효시키느냐 오크통(와인에 미세한 오크의 맛이나 탄난을 더해줌)에서 발효시키느냐, 또 와인 메이커가 발효에 어떤 효모를 사용하는가 등에 따라서도 풍미가 달라진다.
>>알코올 함량, 풍미, 바디
와인의 알코올 함량이 높을수록 바디(입 안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가 더 묵직하다. 알코올은 물보다 농도가 높아서 와안의 알코올 함량이 높을수록 바디가 더 묵직해지기 마련이다. 수확 시의 숙성도가 높은 포도일수록 천연 당분이 더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발효 과정에서 그만큼 알코올 함량이 높아진다. '와인 추출물(와인 속에 녹아 있는 모든 고형물)' 또한 바디에 영향을 미친다. 탄난과 단백질 같은 미세 고형물들도 이 추출물에 해당되며, 발효 전이나 후에 포도의 메서레이션을 거치거나 와인의 여과 과정을 생략하게 되면 추출물은 더 늘어나게 된다. 발효 후에 와인에 남는 잔당도 추출물의 일종으로 바디에 큰 영향을 준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스위트 와인이 드라이한 와인 보다 바디가 더 묵직하다.
>>발효 과정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는 으깨어져서 때 이른 발효가 시작되지 않도록 작은 나무상자에 살살 담아서 옮겨야 한다. 상급의 와인을 빚을 땐 가지, 이파리, 돌멩이 등의 MOG를 제거하기 위해 포도를 컨베이어 벨트에 실어놓고 직접 골라낸다.
와인 양조 시에 와인 메이커가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할 일은 포도 줄기를 제거할지 말지이다. 청포도는 예외 없이 거의 줄기를 제거하는 기계를 거친다. 레드 와인은 탄난이 더 우러나오도록 줄기의 일부나 전체를 그대로 둔 채로 포도즙에 포도껍질과 줄기를 같이 담가놓는다. 포도를 파쇄기에 넣어 포도알을 으깨기도 한다.
포도 선별과 줄기 제거, 경우에 따라 파쇄 작업까지 끝나고 나면 이때부터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은 양조 방식이 달라진다. 주된 이유는 포도 껍질 때문이다. 모든 포도껍질에는 좋은 와인을 빚는 데 필수불가결한 복합적 풍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포도껍질과 씨에 함유된 탄닌은 어린 와인에 쓰고 떫은맛을 띠게 할 수도 있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엔 특정 시점이 지나면 탄닌은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된다. 이런 이유로 청포도는 즙만 따로 분리하여 발효하기 위해 파쇄 후에 곧바로 머스트를 압착하는 것이 보통이다.
청포도 중에서 일정 시간 동안 포도즙에 포도껍질을 같이 담가놓아도 괜찮은 품종들이 있는데, 이 과정을 스킨 콘택트라고 부른다. 이 과정을 거치면 껍질에서 품종 특유의 아로마와 풍미가 우러나와 와인이 더 깊은 풍미를 지니게 된다.
>>적포도와 화이트 와인
와인색은 전적으로 포도껍질에서 나온다. 따라서 수확 후에 껍질을 제거하면 와인에 아무 색도 우러나오지 않아 화이트 와인이 된다. 실제로 프랑스 샹파뉴에서 재배되는 포도는 대부분 적포도이지만 생산되는 와인은 주로 화이트 와인이 주를 이룬다. 캘리포니아의 화이트 진판델도 적포도 품종인 진판델로 만든다.
>>메서레이션(침용)
발효 전에 껍질과 즙을 분리하는 청포도와 달리, 적포도는 머스트를 바로 발효 통에 넣는다. 이때 일어나는 과정이 '메서레이션 Maceration', 즉 향, 탄난, 빛깔을 우려내는 과정이다.
메서레이션을 거치면 향과 마우스 필(와인을 입 안에 머금었을 때의 무게감과 질감)이 더 강해진다. 와인 메이커는 발효 전이나 후에 머스트의 메서레이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탄닌
탄닌은 천연 방부제이며 와인에 긴 수명을 부여해 주는 여러 성분 가운데 하나이다. 탄닌의 느낌은 '떫다'는 말로 표현된다. 특히 어린 와인은 탄닌이 아주 떫어서 와인에 쓴맛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탄닌은 미각의 느낌이 아니라 촉각의 느낌이다. 레드 와인은 화이트 와인보다 탄닌의 함량이 높은데, 이는 통상적으로 포도껍질째 발효시키기 때문이다. 탄닌은 포도의 껍질, 줄기, 씨에서도 나오며 오크통 속에서 발효나 숙성을 거치는 경우에는 나무에서도 탄닌이 우러나온다.
탄닌은 진한 차에도 들어있다. 그런데 차의 떫은맛을 덜어내고 싶을 때 무엇을 넣는가? 바로 우유다. 우유 속의 지방과 단백질이 탄닌을 부드럽게 해 준다. 탄닌 함량이 높은 와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치즈 같은 유제품과 함께 와인을 마시면 탄닌이 부드러워지면서 와인에 감칠맛을 더해준다. 소고기요리를 소스 없이 먹거나 크림소스를 곁들여 먹을 때 탄닌의 떫은맛이 강한 어린 레드 와인을 맛보면서 직접 차이를 느껴 볼 수 있다.
>>산도
모든 와인에는 일정 수준의 산도가 있다. 와인 메이커들이 과일맛과 신맛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애쓰고 있긴 하지만 대체로 화이트 와인이 레드 와인보다 산도가 높다. 지나치게 산도가 높은 와인은 시큼하기도 하다. 산도는 와인 숙성에 아주 중요한 성분이다.
>>유산 발효
유산 발효는 알코올 발효와 앙금 콘택트 후의 과정이다. 거의 모든 레드 와인은 병입 후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이 유산 발효를 거치지만, 화이트 와인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유산 발효 과정을 생략한다.
수확 시기의 포도는 시큼한 사과산이 다량 들어 있어서 청사과만큼 산도가 높다. 대부분의 레드 와인과 일부 화이트 와인의 경우, 와인 메이커는 자연 생성 유산균이 유산 발효를 시작하면 내버려 두어 시큼한 사과산 일부를 더 부드러운 유산(젖산)으로 변환시킨다. 화이트 와인의 경우엔 일부 샤르도네를 제외하면 대부분 유산 발효가 생략된다.
화이트 와인에서는 대체로 신마시 바람직한 특성인데 유산 발효를 거치면 와인에 버터의 풍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혹시 캘리포니아의 버터 풍미가 진한 샤르도네를 마셔본 적이 있다면 유산 발효의 영향을 이미 음미해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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